| 인생수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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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한권이다. 대학졸업하고는 류시화 관련된 책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나름데로 바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류시화가 쓴 글은 아니고 옮긴 글이다. 솔직히 딱히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집어든 것은 아니었다. 까르푸에 쇼핑을 하다가 책이 눈에 들어와서 조금 살펴봤더니 읽고 싶어지더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교훈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다. "인생 수업" 中 잃을게 있는 사람이 하는 말과 더이상 잃을게 없는 사람이 하는 말에는 무게의 차이가 있다. 사람은 손에 무엇을 쥐는 순간 그것을 쉽게 놓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 또는 죽음의 문앞을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는 삶에 대한 진실이 아닐수가 없을 것이다.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주고받는 사랑은 어린 시절 내가 정의 내린 사랑의 모습에 기초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이 내가 나누고 싶은 사랑인가?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관계인가?" 만일 사랑이 고통스럽고 복잡한 것이라 여겨진다면, 왜 그런가를 추저해봐야 합니다. 사랑을 혼란스럽고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어린 시절에 그런 뒤엉킨 관계를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을 학대라고 여긴다면, 아마도 서로 학대하는 관계를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이 행복하게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즐겁고 모든 것을 함께한느 그런 관계를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이 누군가를 다정하게 보설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아마도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관계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 "인생 수업" 中 와이프는 이책을 읽다가 너무 눈물이 나서 읽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자기한테 이제 금지도서라나... 나한테는 "코드가 맞는 책"인거 같다. (업데이트 2006.10.10) 생의 마지막을 앞에 둔 사람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진실을 배운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배움을 자신의 삶에 실천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 나머지 시간 동안 행복한 삶을 살다가겠지만 말이다. 과거(아주 오래전..)에는 한 지역에서 2-4대에 걸친 교류가 활발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마지막 배움은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얘기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것까지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나름데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은 훌륭한 스승을 주변에 둔것과 같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2006-09-23 (0) |
저자 및 전달 메시지 ‘인생수업’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면서,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적어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형식으로 전달해 주는 책이다. ※ 호스피스 운동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의술(延命醫術)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 안락간호원(安樂看護院)이라고도 하듯이, 이러한 봉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을 뜻하기도 한다. 호스피스는 1815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채리티수녀원의 수녀들이 거리에서 죽어 가는 가난한 환자들을 수녀원으로 데려다가, 임종준비를 시킨 데서 유래한다. 그 뒤 1967년 영국 런던 교외에 세운 성(聖)크리스토퍼 호스피스가 시초가 되어,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는데, 현재 영국에서는 약 200개, 미국에 약 1,200개가 넘는 호스피스가 있다. 한국에서는 강릉의 갈바니병원에서 1978년 6월에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한 것이 최초이다. 1982년 4월 서울의 강남성모병원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어, 대부분의 가톨릭계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특히 1995년에는 국내 최초로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이 세계보건기구(WHO) 호스피스 협력센터로 지정되었다. 호스피스는, 죽음이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완화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암 환자의 치료에도 의학적 견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 : 네이버 백과사전) 가끔 사람이 살아 가면서 ‘나’에 대해서 인식하는 시기가 언제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부터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중학교 이상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초등학교의 기억은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몇몇의 기억들이 존재할 뿐이고 대부분 기억이 나는 시점은 중학교 이후의 시점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자각하고 인식하는 시점은 지금의 나이를 감안할 때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순간, 느끼고 생각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굳이 철학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남아있는 시간이 혹은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 동안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느끼기도 그리 충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우리가 이 지상에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 말고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단 한사람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11p)’라고 전하고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은 어떤 경우에 생기는가? 단편적인 초등학교 때의 기억들도 누구나 기억하고 싶거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어떤 사건들을 기억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앞으로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러한 좋은 또는 힘든 기억들이 아마도 성장된 나를 이끌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행복하고 가지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삶입니다.’(21p)라고 이야기하며 삶에 있어서 사람들이 느끼거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시점을 죽음의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최소한 죽음을 앞둔 시점은 사람을 경건하고 아주 솔직해 지게 만들면 특히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것은 굳이 경험을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죽음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삶의 시작과 끝에서만 우리는 전정으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것일까?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단순한 진리가 드러나는 것일까? 그런 상황이 아니면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22p라고 이야기하면 삶이란 또는 삶의 종착이란 자신만의 일이 아닌 타인과의 상호교류를 통한 인식의 교류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거짓된 모습에 대한 환상을 버릴 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음(p29)’과 이를 위해 스스로를 찾기 위해 타인을 바라보거나 타인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배움의 길이라고 하면 그것도 힘든 배움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고 편협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p44),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연구해 온 많은 사람들처럼 나 또한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p48) 결국 작가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그 배움을 통하여 타인에게 다시 좋은 의미를 전달하는 상호 작용이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중요한 교훈임을 알고 이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 진실한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당신 역시 똑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삶을 정의하는 것은 당신의 몫입니다.”(P76) ‘미래에 대한 그림과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환상, 계획이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사랑은 생명을 갖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이끌려는 방향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람을 조종하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대로 맡겨 두면,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지 않은 놀랍고 멋진 장소로 우리를 데려갈 것입니다.’(p77) 저자는 사랑을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인 아니지만 그 일부분이면서 중요한 점은 계산하거나 예단하는 삶을 살지 말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표출되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과의 관계에 계획이나 기준을 대고 그 길이를 잰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흐르는 대로 놓아 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는 궁굼함이 드는 대목이다. ‘행복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생태인 반면에, 인간은 불행을 더 편안하게 느끼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행복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때로 행복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종종 누군가에 대해 또는 어떤 상황에 대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먼저 행복을 찾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p240) ‘진정한 행복은 어떤 사건의 결과가 아니며,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Pp241) ‘교통 체증에 걸리면 옥석을 퍼붓기 보다 주위를 둘러보고 모두 같은 상황에 높여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해 본다면? 타인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을 한다면? 그리고 익명으로 친절을 베풀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도와준다면?( p251) --------------------------------------------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는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 두 곳 한 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 걸.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보다 우아해 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나며,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2006-09-0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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